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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직후 김일성의 세력구축 야망   10-08-15
관리자   1,144
 

김일성은 북한으로 입성한 직후인 8월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개시하였다. 첫 번째로 민족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반씩 구성하여 평남인민정치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두 번째로, 조선노동당()을 조직하였다(1945. 10 .10). 처음에는 북한만의 지역성을 감안하여 북조선노동당()이라고 하였으나, 1949년 6월부터 남북의 세력을 통합한다는 의미에서 조선노동당으로 개칭하였다.

세 번째로, 1946년 2월부터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조직하였고, 김일성이 인민위원장이 되어 공산정부 수립 전까지 전권을 행사하였다.

네 번째로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남한의 국회의원과 같음)을 선출하여 인민공화국 헌법을 공표하였고(9월 2일), 곧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1948. 9. 9).

김일성은 북한으로 들어와 1당 독재·1인 독재·1족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무자비한 숙청을 감행하였다. 소련에서 귀국하여 국내에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실권 구축을 위해 더욱 숙청을 과감하게 진행하였다.

민족주의자(
조만식 ), 국내파 공산주의자(현준혁 , 박헌영 ), 중국출신 연안파( 중국 공산당이 옌안[]으로 퇴각하여 세력을 키울 때, 그와 연계하여 성장한 한국계 공산주의자)(윤공흠 등)와, 소련계(허가이 )를 차례로 제거하였다. 특히 합작하여 활용한 다음 위험스럽게 생각되면 측근까지도 제거해버렸다.

김일성의 북한 통치는 다음의 3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제1단계는 1945 ~ 1950년대의 폭력혁명기이다. 김일성은 국내로 들어와 기반을 다지고 독재체제를 구축하며 경쟁세력을 숙청하고, 남한까지 공산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6·25 전쟁을 도발하였다.

제2단계는 1960년대로, 이념적으로 공산주의 기본 역사관인 유물사관()에 충실한 시기이다. 이른바 맑스-레닌주의에 몰입하여 강력한 공산혁명을 추진하였다. 자본주의()는 자체모순에 의해 자멸하고 결국 사회주의()로 전환된다는 신념 하에, 인류 역사는 물질과 계급에 의해 진행된다는 이념으로 무장하여, 강력한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인민들을 교육하였다.

제3단계는 1970년대 이후의 시기로, 공산권 내부의 변화 및 국제관계의 변화로 북한이 자주노선을 취한 시기이다.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이 단절되거나 소련 내부의 공산주의 평가 분위기 변화 그리고 중국에서의 문화혁명과 그 후의 평화 외교 등이 원인이 되어 독자노선을 택한 것이다. 이때부터 주체사상()이라는 새로운 독자적 이념을 강조하여, 김일성 사상으로 무장한 폐쇄적이고 독재적인 공산주의를 강화하였다.

김일성은 1족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김정일()에게 정치 경험을 쌓게 한 후 후계자로 삼았다. 그러나 말년에는 부자 간의 갈등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7월 묘향산으로 휴양을 갔다가 동월 8일 심근경색증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소련의 괴뢰 김일성 
김일성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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