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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도 한땐 볼 붉은 소년… 사람의 마음 남아있길”   10-10-27
관리자   1,007
 

김일성 일가 개인 과외교사 지낸 김현식씨, 귀순 15년만에 자서전

김정일을 포함, 김일성 일가의 개인 과외 교사를 지낸 70대 탈북 지식인이 귀순 15년 만에 자서전을 내고 북한 수뇌부를 비판했다. 김현식(金賢植·75) 전(前) 김형직사범대학 교수는 22일 발간된 자서전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김영사)에서 “김정일도 한때는 볼이 붉은 소년이었다”며 “그에게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기를,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북한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고 큰 결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썼다.

미국 워싱턴 DC 근교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김 교수는 “한국 언론에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만이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한 유일한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본명과 얼굴을 감추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탈북 직전까지 김형직사범대학 로어과 교수로 근무했다. 당(黨)이 주는 공로 훈장과 메달을 스무 개 가까이 받은 엘리트 당원이었다. 김일성의 처조카들에게 개인 과외를 했다. “아들의 외국어 실력을 점검해보라”는 김일성의 명을 받아, 어린 소년 김정일과 독대하며 러시아어 문법·회화 시험을 치른 적도 있었다.
▲ 미국 워싱턴 DC 근교 자택 서재에 앉은 탈북 지식인 김현식 전 김형직 사범대학 교수. 김일성 일가의 개인 과외 교사를 지낸 김 교수는 22일 자서전을 내고 북한 수뇌부를 비판했다. /김영사 제공

그는 1991년 국립 러시아사범대학에 교환교수로 파견됐다. 김일성은 “최근 남한 교수가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당신이 더 잘 가르쳐서 본때를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전혀 다른 운명이었다. 러시아에서 6·25 때 월남해 미국에 이민간 누나와 북한 당국 몰래 극적으로 상봉한 것이다. 이 사실을 누군가가 당국에 밀고했다. “즉시 평양으로 복귀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소환은 죽음을 뜻했다. 겁에 질린 그는 “한국행 배를 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귀순 직후부터 10년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과 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각각 북한 체제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 그 10년은 “모멸을 견디는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에 온 뒤 비로소 풍요와 인권과 자유가 뭔지 알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목이 터져라 북한의 참상을 전해도 한국 사람들은 내 앞에서만 ‘아, 그렇습니까?’하고, 뒤에선 ‘반공 강사’라는 식으로 폄하했습니다.”

김 교수가 자서전에 기술한 북한의 실상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방불케 한다. 동료 교수가 당원증을 분실했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숙청된 일도 있고, 김정일의 비위를 거스른 여배우가 남편이 보는 앞에서 공개 총살되는 장면을 목격한 그의 제자 이야기도 들어 있다. 김 교수는 “직접 살다 온 내가 이런 참상을 전하는데 믿지 않다니….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는 내 가족을 생각하면 온 몸이 매 맞은 것처럼 쑤시고 절망이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김 교수는 결국 한국을 떠났다. 그는 만 4년째 미국에 체류 중이다. 첫 3년은 예일대 초빙교수, 지난 1년은 조지 메이슨 대학 연구교수였다. 9월에는 하버드 대학으로 옮긴다. 그는 15년 전 모스크바에서 장남에게 선물로 주려고 산 전자계산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가족의 명복을 빈다”고 썼다. 전화 통화에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목이 멜 때면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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